이백천 별세 소식과 프로필, 나이, 사망 원인을 알아봅니다. 1960년대 쎄시봉에서 DJ와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며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이장희 등과 인연을 맺은 이야기부터 청개구리집 공연 기획, 한국 포크 음악 활동, 이백천의 음악여행 출간과 장례 일정까지 주요 생애를 정리했습니다.
이백천 별세 향년 93세
이백천은 2026년 9월 2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3년생으로 별세 당시 나이는 93세였습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월 23일 오전 7시로 전해졌습니다.
유족으로는 딸 이소연 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장과 사위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등이 있습니다.



그의 부고가 전해지면서 가요계에서는 1960~70년대 통기타 문화를 함께했던 원로 음악인의 삶도 다시 조명됐습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보다 음악인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던 방송인이자 기획자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백천 프로필과 젊은 시절
프로필을 살펴보면 음악과의 인연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됩니다.
1933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뒤 어린 시절 서울로 왔으며 중앙중학교 재학 당시 밴드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이후 해군 군악대에서 복무했고 미8군 악단에서도 활동하면서 음악 현장을 경험했습니다.
1964년에는 TBC 동양방송에 PD로 입사했습니다.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마이크를 잡아 MC와 DJ로도 활동했습니다.
음반을 듣고 소개하는 일부터 신인 가수들의 무대를 만드는 일까지 활동 영역이 넓었습니다.
대중음악평론가라는 프로필로 많이 알려졌지만 실제 이력을 보면 방송 제작자와 진행자, 공연 연출자라는 표현도 함께 따라옵니다.
이런 경험은 이후 쎄시봉과 포크 음악계를 연결하는 바탕이 됐습니다.
사망 원인
이백천의 사망 원인은 별세 소식을 전한 보도에서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 9월 21일 별세했으며 향년 93세였다는 내용이 전해졌습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습니다.
발인은 9월 23일 오전 7시로 알려졌습니다.
쎄시봉 무교동 음악감상실
이백천 프로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가 쎄시봉입니다.
1960년대 서울 무교동에 자리했던 음악감상실로 당시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TBC PD로 근무하던 1964년 음반을 구하러 이곳을 찾았다가 DJ를 맡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대학생의 밤’, ‘데이트 위드 쁘띠 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쎄시봉에는 당시 대학생이거나 무명에 가까웠던 젊은 음악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조영남을 비롯해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등 훗날 유명 가수가 된 인물들과의 만남도 이 시기에 이어졌습니다.
이백천은 이들과 가까이 지내며 공연 무대를 만들고 젊은 음악인을 관객에게 소개했습니다.
쎄시봉 멤버들이 그를 ‘똘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세월이 흘러 쎄시봉이 추억의 통기타 문화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다시 알려진 뒤에도 이들의 인연은 계속됐습니다.
2014년 그의 출판기념회에도 송창식과 조영남, 이장희 등 오랜 음악 동료들이 참석했습니다.
쎄시봉 이후 청개구리집으로
1969년 쎄시봉이 문을 닫은 뒤에도 활동은 이어졌습니다.
1970년에는 서울 명동 YWCA에 있던 음악감상실 ‘청개구리집’에서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청개구리집 역시 당시 젊은 음악인들의 중요한 활동 공간이었습니다.
김민기와 양희은, 서유석 등이 이곳에서 노래했습니다.



무교동 쎄시봉에서 형성됐던 통기타 문화가 명동의 새로운 무대로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이백천은 공연을 기획하고 젊은 가수들을 소개하며 현장을 지켰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라가면 1960년대 쎄시봉부터 1970년대 포크 음악의 성장 과정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가수들의 노래만큼 그 노래가 울려 퍼질 공간도 중요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포크 음악과 함께한 오랜 시간
이백천은 방송과 공연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1988 서울올림픽과 대전엑스포 문화축전 전문위원을 지냈고 KBS 시청자위원으로도 참여했습니다.
한국포크싱어연합회에서는 상임고문을 맡았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이어진 포크 음악과의 인연이 오랜 기간 계속된 것입니다.



직접 노래를 남긴 기록도 있습니다.
2002년 윤형주, 송창식, 김도향, 김세환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 음반에서 ‘추억 여행’을 불렀습니다.
2014년에는 자신의 음악 인생을 담은 책 ‘이백천의 음악여행’을 펴냈습니다.
1960~70년대 대중문화 현장을 직접 경험한 그의 이야기가 책에 담겼습니다.
무대 뒤에서 지켜본 한국 대중가요
한국 포크 음악을 이야기하면 대개 유명 가수와 대표곡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 뒤에는 노래할 장소를 만들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했던 방송인과 기획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백천은 바로 그런 역할을 오랫동안 맡았던 인물입니다.
쎄시봉에서는 DJ와 프로그램 진행자로 젊은 음악인을 만났고, 청개구리집에서는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방송국에서는 PD와 MC로 일했고 이후에도 문화 행사와 관련 단체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가 만났던 젊은 가수들은 시간이 지나 한국 대중가요사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습니다.
2026년 9월 21일 전해진 별세 소식과 함께 이백천 프로필과 나이, 쎄시봉 시절의 이야기도 다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통기타가 청년 문화의 상징이던 시절과 한국 포크 음악이 대중에게 퍼져가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백천 관련 FAQ
이백천은 몇 살에 별세했나요?
1933년생으로 2026년 9월 21일 별세했습니다.
당시 나이는 향년 93세였습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월 23일 오전 7시로 전해졌습니다.
이백천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사망 원인은 별세 당시 공개된 보도에서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부고에서는 2026년 9월 21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과 향년 93세라는 내용이 전해졌습니다.
장례는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에서 치러졌습니다.
이백천은 쎄시봉에서 무엇을 했나요?
1960년대 무교동 쎄시봉에서 DJ를 맡았습니다.
‘대학생의 밤’과 ‘데이트 위드 쁘띠 리’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했습니다.
이 시기에 송창식, 윤형주, 조영남, 이장희 등 여러 음악인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백천은 가수인가요?
주요 활동은 방송 PD와 DJ, MC, 대중음악평론, 공연 기획 분야였습니다.
2002년에는 포크 가수들이 함께한 옴니버스 음반에서 ‘추억 여행’을 직접 부르기도 했습니다.
2014년에는 ‘이백천의 음악여행’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포크 음악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쎄시봉에서 젊은 가수들의 무대를 만들었고 이후 청개구리집에서도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등 당시 새로운 세대의 음악인들이 활동하던 현장과도 인연이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포크싱어연합회 상임고문을 맡는 등 포크 음악계와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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