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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조세이 탄광|위치·조선인 강제동원·수몰 사고 183명·유골·꼬꼬무

by 지혜의 안내자 2026. 9. 11.

조세이 탄광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던 해저 광산으로, 1942년 수몰 사고로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183명이 희생됐습니다. 강제동원 역사와 조세이 탄광 위치, 유골 발견 및 DNA 감식 현황, 2026년 SBS 꼬꼬무 방송에서 다룬 사건의 배경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해 봉환 문제를 쉽게 정리합니다.

바다 밑에 만들어진 조세이 탄광

조세이 탄광 위치는 일본 혼슈 서쪽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입니다.
당시 갱도는 육지가 아니라 바다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으며, 사고 지점은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저 지하 갱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해저에서 석탄을 캐던 시설이라는 점입니다.
바닷물이 스며들 경우 일반 광산보다 위험이 훨씬 컸고, 조선인 노동자의 비율도 매우 높았습니다.
관련 기록과 연구에서는 당시 이곳이 ‘조선탄광’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조선인이 투입됐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조세이 탄광 위치를 찾아가면 당시 채굴 시설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바다 위로 ‘피야’라고 불리는 환기·배수 시설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물은 오랜 세월 수몰 현장을 알려주는 상징처럼 남아 유해 수습을 위한 잠수 조사의 통로로도 활용됐습니다.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어진 현장

일제강점기 전쟁 수행에 필요한 석탄 생산이 확대되면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 각지의 광산과 공장에 동원됐습니다.
조세이 탄광 역시 그런 강제동원 현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자료를 보면 이곳에서 일한 조선인들은 채탄 작업에 투입됐고, 숙소와 작업장에서는 이동과 행동이 강하게 통제됐습니다.
임금 역시 강제저축 방식으로 관리됐으며 탈출을 시도하다 적발되면 구타를 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세이 탄광에서 조선인이 맡은 일은 위험한 갱내 작업과 밀접했습니다.
해저에서 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관리자의 지시 없이 마음대로 작업장을 빠져나오기 어려웠다는 자료가 전해집니다.
이러한 노동 환경을 보면 강제동원 문제가 단순히 일본으로 이동해 일했다는 의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183명이 빠져나오지 못한 수몰 사고

1942년 2월 3일 조세이 탄광 내부에서 누수가 커지면서 갱도가 바닷물에 잠기는 수몰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당시 작업 중이던 183명이 목숨을 잃었고, 조선인 희생자만 136명에 달했습니다.
일본인 사망자는 47명이었습니다.

조세이 탄광|위치·조선인 강제동원

해저 시설이라는 구조적 위험성은 사고의 피해를 키운 중요한 배경으로 지적됩니다.
현지 시민단체는 오전 6시 무렵 침수가 시작돼 오전 9시 30분쯤 참사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해 왔습니다.

183명이라는 숫자만 보면 오래전 광산 재해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자 다수가 조선인이었고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위험한 노동을 해야 했다는 점에서 수몰 사건은 지금까지 한일 과거사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분 확인된 내용 현재 의미
조세이 탄광 위치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과 앞바다 해저 갱도 강제동원 현장과 유해 조사 장소
수몰 사고 1942년 2월 3일 발생 해저 갱도가 침수되며 대규모 인명 피해 발생
희생 규모 183명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
유골 조사 2025년 뼛조각과 두개골 등이 발견됨 DNA를 이용한 신원 확인이 과제로 남음
꼬꼬무 2026년 9월 10일 관련 사건 조명 참사의 과정과 남겨진 문제를 대중에게 소개

8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유골

오랜 기간 해저 갱도에는 희생자 유골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본격적인 접근은 쉽지 않았습니다.
1991년부터 일본 시민단체와 유족 등이 사고를 기억하고 유해를 수습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큰 변화가 생긴 것은 2024년과 2025년입니다.
2024년 잠수 조사를 통해 갱도 접근 가능성이 확인됐고, 2025년 8월 한일 잠수사들의 조사 과정에서 사람의 뼈로 보이는 물체가 발견됐습니다.
이어 두개골까지 인양되면서 유골 수습과 신원 확인 가능성이 현실적인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유골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면 DNA 비교가 필요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관련 감정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2026년 9월 현재 모든 절차가 끝난 상태는 아닙니다.

2026년에도 끝나지 않은 DNA 확인

2026년 9월 8일 공개된 최신 자료를 보면 조선인 희생자 136명 가운데 37명은 유족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통해 찾은 99명의 유족 가운데서도 일부는 DNA 관련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확보된 유족 검체는 76명분으로 전해졌습니다.
발견된 유골과 유족 DNA를 실제로 대조해 희생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작업 역시 아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국회에는 장생탄광 강제동원 진상규명과 희생자 지원, 유해 발굴과 봉환을 다루는 특별법안도 발의돼 있습니다.
다만 2026년 9월 8일 기준 관련 법안들은 국회에서 심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꼬꼬무가 다시 꺼낸 조세이 이야기

조세이 탄광이 다시 검색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른바 꼬꼬무 방송입니다.
2026년 9월 10일 방송되는 꼬꼬무는 ‘검은 뼈 - 49년 만에 전해진 부고’ 편에서 이 사건을 다룹니다.

방송에는 전 수영 국가대표 박태환, 가수 김종서, 배우 변요한이 리스너로 출연합니다.
꼬꼬무 제작진은 일제강점기 해저 갱도에서 강제 노동을 하던 조선 청년들의 생활과 183명이 숨진 수몰 사고의 과정, 이후 남겨진 유골 문제를 따라갑니다.

이번 꼬꼬무를 통해 사건을 처음 알게 됐다면 ‘왜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세이 탄광 참사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당시 작업 환경과 강제동원 구조를 함께 확인해야 전체 모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찾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일

183명의 희생자는 숫자로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136명의 조선인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였으며, 고향에서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2025년 발견된 유골은 80년 넘게 멈춰 있던 문제를 다시 움직이게 했습니다.
다만 발견 자체가 끝은 아니며, 신원 확인과 추가 수습, 유족에게 돌려보내는 봉환 과정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조세이 탄광 위치는 일본 야마구치현의 작은 해안이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수몰 사고가 남긴 질문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남은 유골을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과정이 진행될 때 비로소 183명의 이야기도 역사 속 숫자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록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조세이 탄광은 어디에 있나요?

조세이 탄광 위치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과 그 앞바다입니다.
석탄을 캐는 갱도가 바다 밑으로 뻗어 있던 해저 광산이었습니다.
1942년 수몰 사고가 난 지점은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저 갱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몰 사고 때 정말 183명이 숨졌나요?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총 희생자는 183명입니다.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이 숨졌습니다.
조선인 피해자가 전체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강제동원 역사를 설명할 때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입니다.

발견된 유골의 신원은 확인됐나요?

2025년 잠수 조사에서 뼛조각과 두개골 등이 발견됐지만 모든 신원이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2026년 9월 현재 유족 DNA 검체 확보와 대조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인 희생자 136명 가운데 37명은 유족도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최근 보도됐습니다.

조선인들은 왜 조세이 탄광에서 일했나요?

일제강점기 전쟁 수행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이 일본의 광산과 공장으로 동원됐습니다.
이곳 역시 대표적인 강제동원 현장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당시 숙소 통제와 강제저축, 탈출자에 대한 폭력 등 열악한 노동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도 남아 있습니다.

꼬꼬무에서는 언제 조세이 탄광을 다루나요?

SBS 꼬꼬무는 2026년 9월 10일 ‘검은 뼈 - 49년 만에 전해진 부고’ 편에서 관련 내용을 조명했습니다.
박태환, 김종서, 변요한이 리스너로 참여했습니다.
방송은 조선인 강제동원과 183명이 숨진 수몰 사건, 오랫동안 바다 밑에 남아 있던 유골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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