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소식과 프로필을 정리했습니다. 1932년생으로 향년 94세에 별세한 정호용의 나이, 전두환·노태우와 육사 11기 인연, 하나회 전신 칠성회, 12·12 군사반란과 5·18 당시 특전사령관 경력, 재판 결과와 국방부 장관·국회의원 이력까지 확인합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정호용 전 장관은 1932년생입니다.
2026년 9월 13일 사망하면서 향년 94세로 생을 마쳤습니다.
이번 사망 소식이 크게 보도된 데에는 그의 과거 이력이 있습니다.
정호용은 전두환·노태우와 함께 신군부 핵심 인사로 분류돼 왔고, 주요 인사들이 먼저 숨진 뒤 마지막 생존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까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정호용은 이른바 신군부 핵심 인사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로 언급돼 왔습니다.
9월 13일 정호용까지 사망하면서 당시 주요 인물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들을 기회도 더 줄어들게 됐습니다.
| 이름 | 정호용 |
| 출생 | 1932년 |
| 사망 | 2026년 9월 13일 |
| 사망 나이 | 향년 94세 |
| 고향 | 대구 |
| 군 경력 | 특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등 |
| 주요 관직 |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
| 정치 경력 | 제13·14대 국회의원 |
| 육사 | 육군사관학교 11기 |
| 동기 | 전두환·노태우 등 |
| 하나회 관련 | 하나회 전신으로 평가되는 칠성회 참여 |
| 5·18 당시 직책 | 육군 특수전사령관 |
| 12·12 관련 | 반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유죄 확정 |
전두환 노태우와 육사 11기 동기
정호용 프로필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전두환과 노태우입니다.
세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였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하나회의 출발점을 육사 11기 영남 출신 장교들이 1958년 만든 친목모임 ‘칠성회’에서 찾습니다.
이 모임에는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이 참여했습니다.



칠성회는 이후 하나회로 확대됐습니다.
하나회는 육사 출신 장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공식 군내 사조직으로, 이후 신군부 형성 과정에서도 중요한 기반이 됐습니다.
정호용과 전두환의 관계는 단순한 군 선후배 관계와 달랐습니다.
육사 동기였고 하나회 계열의 인맥을 공유했으며 전두환 집권 뒤 정호용은 군과 정부에서 여러 핵심 직책을 맡았습니다.
12·12 당시 정호용의 위치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12·12 군사반란은 정호용 프로필에서 중요한 사건입니다.
당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로 연행하고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정호용은 이 12·12 사건과 관련해 훗날 형사재판을 받았습니다.
1996년 1심 판결문에는 정호용을 포함한 피고인들이 명시됐으며,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병력 동원과 연행 등이 범죄사실로 다뤄졌습니다.



최종적으로 정호용에게는 반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가 인정됐습니다.
12·12와 이후 5·18 관련 사건을 함께 다룬 재판에서 대법원 확정형은 징역 7년이었습니다.
12·12 당시의 신군부 인맥을 설명할 때 하나회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해 하나회 출신 군인들이 군 내부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었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정호용의 직책은 육군 특수전사령관이었습니다.
특전사 예하 공수여단이 광주에 투입됐던 시기입니다.
5·18 진압과 관련한 정호용의 형사책임 역시 이후 재판 대상이 됐습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자료에는 당시 특전사령관 정호용에게 반란중요임무종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고 정리돼 있습니다.



내란목적살인 부분은 1심에서 무죄였지만 항소심에서 유죄로 바뀌었습니다.
대법원에서도 유죄 판단이 유지됐으며 최종 징역 7년이 확정됐습니다.
5·18 진압 과정의 발포와 지휘 책임 문제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조사 대상이 됐습니다.
법원이 유죄로 확정한 내용과 별개로 구체적인 개별 발포 명령 경위 등 모든 사실관계가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닙니다.
정호용은 생전 자신에게 제기된 5·18 관련 책임 가운데 일부를 부인하는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그가 사망하면서 당시 신군부 핵심 인물에게 직접 설명을 듣는 길도 사실상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5·18 재판에서 징역 7년 확정
12·12와 5·18 사건 재판은 199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정호용도 전두환, 노태우 등과 함께 법정에 섰습니다.
1996년 1심에서는 징역 10년이 선고됐습니다.
항소심을 거치면서 형량이 징역 7년으로 줄었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습니다.



재판에서 12·12는 군사반란, 5·18 관련 일련의 행위는 내란 사건으로 다뤄졌습니다.
정호용의 경우 특전사령관이라는 당시 지위도 사법적 판단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습니다.
이후 1997년 12월 특별사면이 이뤄졌습니다.
다만 특별사면은 확정된 유죄 판결 자체를 무죄로 바꾸는 절차는 아닙니다.
육군참모총장에서 국방부 장관까지
5·18 이후 정호용은 군의 주요 보직을 계속 맡았습니다.
특전사령관을 거쳐 육군참모총장에 올랐습니다.
군 생활을 마친 뒤에는 정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내무부 장관을 지냈고 이후 국방부 장관도 맡았습니다.



전두환 정부 시기에 정호용이 군과 행정부의 핵심 직책을 연이어 맡은 점은 전두환과의 오랜 인연과 함께 자주 언급됩니다.
전두환·노태우와 육사 11기 동기였고 하나회 계열의 중심 인사라는 프로필도 그의 정치적 경력과 겹쳐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정치권으로 이동했습니다.
제13대와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군인과 국방부 장관 이후 정치인으로 활동했습니다.
군인연금 소송도 있었습니다
12·12와 5·18 관련 유죄 확정은 퇴임 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란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에 대한 군인연금 지급 제한이 적용됐습니다.
정호용을 포함한 12·12 관련 인사들은 연금 지급을 요구하며 소송을 냈습니다.
2014년에는 정호용과 최세창 전 국방부 장관 등 관련 인사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역시 12·12 유죄 판결이 이후 삶에 남긴 흔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과거 군 경력과 국방부 장관 프로필만으로 정호용의 생애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호용 재산, 부동산 중심 1,000억 원대 추정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 일가의 재산은 탐사보도를 통해 부동산을 중심으로 1,0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 바 있습니다.
뉴스타파 조사에 따르면 정호용 본인과 가족 명의로 전국에 땅과 건물, 아파트, 오피스텔 등 62건의 부동산이 확인됐으며,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도산대로 인근 건물은 2021년 약 415억 원에 매각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경기도 과천 일대에도 1만㎡가 넘는 토지와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고, 서울 용산과 강원 평창, 충남 서산, 전남 무안 등에서도 부동산이 확인됐습니다.
정호용은 1993년 국회의원 재산 공개 당시 약 93억 원을 신고했는데, 이후 장기간의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거치면서 일가 자산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다만 1,000억 원은 공식 재산신고액이나 사망 당시 확정된 상속재산이 아니라 언론이 확인한 부동산과 거래가치 등을 토대로 한 추정치라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군부 마지막 생존자까지 모두 역사 속으로
전두환은 2021년, 노태우도 같은 해 사망했습니다.
신군부 주요 인물들의 사망이 이어지면서 정호용은 마지막 생존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2026년 9월 13일 향년 94세로 사망하면서 한 시대를 함께했던 핵심 인사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호용 프로필에는 육군참모총장,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회의원이라는 경력이 남아 있습니다.
동시에 전두환·노태우와의 육사 인연, 하나회 계열,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유죄 판결도 함께 기록돼 있습니다.
9월 13일 전해진 사망 소식은 단순한 전직 장관의 부고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12·12와 5·18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사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정호용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다시 과거 기록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FAQ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나이는 몇 살인가요?
정호용은 1932년생입니다.
2026년 9월 13일 사망했으며 향년 94세였습니다.
빈소는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습니다.
주요 보도에서는 구체적인 사망 원인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정호용과 전두환은 어떤 관계였나요?
정호용과 전두환은 노태우와 함께 육사 11기 동기였습니다.
세 사람은 군 생활 초기부터 인연을 맺었습니다.
전두환·노태우·정호용 등 영남 출신 육사 11기 장교들이 참여한 칠성회는 하나회의 전신으로 평가됩니다.
이후 하나회 인맥은 신군부 형성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됐습니다.
정호용은 5·18 당시 어떤 직책이었나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정호용은 육군 특수전사령관이었습니다.
특전사 예하 공수부대가 광주 진압에 투입됐습니다.
정호용은 이후 5·18 관련 재판에서 내란중요임무종사와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유죄 판단을 받았습니다.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습니다.
12·12 군사반란에서도 유죄를 받았나요?
그렇습니다.
정호용은 12·12 관련 반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이 인정됐습니다.
12·12와 5·18 관련 사건을 함께 심리한 재판에서 최종 징역 7년이 확정됐습니다.
이후 특별사면됐지만 유죄 판결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호용은 하나회 출신인가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하나회의 시초를 1958년 육사 11기 영남 출신 장교들이 만든 칠성회로 설명합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이 이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이 조직은 이후 하나회로 확대됐습니다.
정호용을 하나회 계열의 핵심 군 인사로 설명하는 배경입니다.
정호용의 주요 프로필은 어떻게 되나요?
정호용은 1932년생 군인 출신 정치인입니다.
특전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이후 제13·14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2026년 9월 13일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94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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